사마리아 오경 (Samaritan Pentateuch) feat. 수가성 여인
요한복음 4장에는 사마리아의 수가성 여인과 예수님과의 대화가 짧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요4:20)
그 대화의 내용은 매우 간결하지만 그 안에는 극과 극으로 다른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대인들의 신앙관이 담겨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장소가 그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찾아 갔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솔로몬이 세운 하나님의 성전이 있기 때문입니다(대하 3:1이하). 반면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심에서 예배와 제의를 드렸다면, 예루살렘의 시온 산 위에 성전이 세워졌듯이 그 산 위에 사마리아 사람들의 성전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렇다면 그리심 산 위에 성전을 짓고 제의를 드린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요세푸스(37-약100CE)라는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는 그리심 산의 성전이 알렉산더 대왕시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의 노력으로 그리심 산 위에 세워진 성전의 연대를 특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심 산의 성전 터로 추정되는 지역을 20년 넘게 발굴하면서 1만7천 개 이상의 금화와 은화들을 발굴했고, 수천 점의 토기와 양, 염소, 소, 비둘기의 뼈들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두 개의 성전 터를 발견하였는데요. 그 중 오래된 성전은 기원전 5세기, 그러니까 요세푸스가 말한 때 보다 대략 1세기 전에 세워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참조. 다른 성전은 기원전 2세기에 건축되었음). 이 시기는 에스라-느헤미야와 동시대입니다. 느헤미야가 유다로 와서 대략 12년을 있었습니다(445-433 BCE). 그리고는 유다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쌓고 잊고 살았던 율법을 회복시켰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였고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살겠노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비운 사이 느헤미야의 모든 수고는 헛것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유다의 사람들은 이방인들과 결혼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을 잃어버리기 시작했고 유다의 지도자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제의를 돕는 레위인들에게 그들이 받아야할 몫을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생활고를 겪던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떠나 흩어져 버렸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런 유다의 혼란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유다에 비해서 그 제의나 율법이 체계적이지 못했던 것같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것들을 보완하기 위해서 포로로 잡혀갔다 다시 유다 땅으로 돌아온 유다의 제사장들 그리고 레위인들과 교류하려고 노력하였고, 그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공을 들였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율법과 예배의 체계를 만들고 싶었으니까요.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다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서 무던히 애썼습니다. 그러던 중 느헤미야의 공백 시기 제대로 자신들의 몫을 받지 못하여 살 길을 찾아 예루살렘 성전을 떠났던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을 받아들여 그리심 산에 예루살렘 성전과 같은 성전을 건축하고 그곳을 사마리아의 가장 거룩한 성소로 삼은 것입니다. 고고학자들은 발굴된 성전과 그 주변의 마을들의 규모를 토대로 그리심 산의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주거 지역과 제의 구역의 면적이 대략 400두남(약 12만평)이나 되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어마어마한 수의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이주한 것이지요. 사마리아의 제의는 급속도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2세기에 이르러서는 사마리아 성전이 예루살렘 성전 못지 않은 권위를 가진 장소로 인식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에 세운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무척 뿌듯해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서 율법을 고쳐썼습니다. 성경의 내용을 바꾼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읽는 성경인 사마리아 오경(Samaritan Pentateuch)이 탄생합니다. 사마리아 오경과 유대인들의 성경은 매우 소소한 부분에서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그 작은 차이가 엄청난 신학적인 대립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사마리아 사람들도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십계명을 신앙의 토대로 삼고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이 보는 성경과 그 내용이 동일한 우리 말 성경의 십계명과는 달리 사마리아 사람들은 출애굽기 20:17 뒤에 내용을 첨가하였는데, 아래와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를 네가 유업으로 받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날에 너는 큰 돌들을 세우고 회반죽을 바르라. 그 위에 이 율법의 말들을 기록하라. 그리고 요단 강을 건너고 오늘날 내가 네가 명령한 이 돌들을 그리심 산에 세우라. 그리고 그곳에 여호와 너의 하나님을 위한 돌제단을 만들어라. ׳제단 위에는 철을 두르지 말아라. 너는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을 온전히 돌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난 다음 그 위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를 드려라. 너는 제물을 드리고 그 곳에서 제물을 먹어야한다. 너는 요단 건너편 해지는 곳 길갈 앞 가나안 사람들이 거주하는 땅 세겜 앞의 모레 상수리 나무가 있는 그 산에서 여호와 너의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요한복음 4:20에 소개된 사마리아 여인의 질문은 그 여인이 들었던 바로 이 사마리아 오경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