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영 칼럼] 젊은이들이 왜 무속 신앙에 빠져드는가?
▲정재영 교수 ⓒ데일리굿뉴스
한국인과 무속 신앙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무속이 크게 확산하고 있다. 이전부터 무속과 관련된 내용들이 방송에 종종 등장했는데, 최근에는 지상파나 종편 방송에서 무당, 신점, 귀신 등을 소재로 하는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른바 MZ 점술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지난 2월 개봉해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파묘’는 기독교인이 만든 오컬트 영화로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러한 무속 신앙은 한국인들에게 전혀 생소하지 않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인들의 심성에 자리 잡아 왔고 종교학자들은 이러한 무속 신앙을 한국 종교성의 원형이라고 본다.
일제 강점기에는 무속을 미신이라고 규정했고, 이후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무속에 대한 억압 정책들이 펼쳐졌으며 무속을 혹세무민하는 잡신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무속은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현대 사회에서 오히려 더 증가하는 추세다.
선거 때나 입시 철마다 점집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손 없는 날’을 찾아 이사 가고, 건물을 짓거나 이전할 때는 으레 고사떡과 돼지머리가 등장한다. 결혼 전 궁합을 보는 것을 필수로 여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사회 유명 인사들이 무속과 관련해서 구설에 오르는 일도 흔한 일이다, 자신이 믿는 종교와 상관없이 무속에 기대어 삶의 중요한 선택을 결정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최근에는 온라인이나 모바일을 활용해 무속인들이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고 있고 굳이 점집을 찾아가지 않아도 무속인들과 연결될 수 있게 됐다. 굿을 하는 비용은 최소 수십만 원에서 최대 수천만 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에 따라 무속·역술 산업의 시장 규모도 어림잡아 수조 원에서 수십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한다.
우리나라에 무속 신앙을 가진 사람이 얼마인지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으나 대표적인 무속인 단체에 등록된 무속인 수가 30만 명에 이른다. 그리고 단체에 등록하지 않은 이들을 합치면 그 수는 5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를 근거로 전문가들은 엄밀하게 무당과 신도의 관계를 유지하지는 않더라도 굿, 점사, 치성을 하는 사람은 줄잡아 100만 명을 웃돌 것으로 추정한다. 가톨릭 인구가 500만 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수이다.
기독교인과 무속
무속은 기독교인들 사이에도 알게 모르게 많이 퍼져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무당이나 철학관을 찾아가 사주·운세·타로·점 등을 보는 경우는 이제 매우 흔한 풍경이 됐다. 여기엔 교회를 다니는 청년들도 예외가 아니다.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작년에 19~34세 개신교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점·사주·타로’의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절반에 가까운 45.4%나 됐다.
얼마 전에 미국의 퓨리서치에서 발표한 내용에서는 한국 기독교인의 33%는 ‘지난 1년간 제사를 지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베트남 86%, 대만 77%, 일본 70%, 한국 52%, 홍콩 48% 순으로 답해 기독교인 비율이 높은 한국과 홍콩이 비교적 낮게 나온 것인데, 그럼에도 한국 기독교인의 3분의 1이 제사를 지낸 적 있다고 응답한 것이다.
또한 한국 기독교인 30%는 ‘지난 1년간 타로·점을 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국내 불교인(50%) 및 무종교인(39%)에 비교해 낮은 응답률이지만 대만 홍콩 베트남의 기독교인은 각각 3%의 응답률을 기록해 한국이 유독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기독교인들이 비성경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성경에는 우상 숭배뿐만 아니라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아가지 마라”고 말씀하고 있다.
어떠한 어려움에 처하든지 기독교인들의 올바른 자세는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미래를 무속인에게 물어보거나 궁합에 근거해서 배우자를 결정하려고 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신앙이다.
시대와 소통하는 신앙을 위해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은 왜 유독 젊은이들이 무속에 빠져드는가 하는 것이다. 통계에서 보면, 20~30대 젊은이들이 점이나 사주를 보는 경험이 더 많다. 이것은 젊은 세대들이 그만큼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염려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젊은 세대들이 여러 무속 관련 콘텐츠에 노출이 많이 돼 그 영향을 받아 재미 삼아 점을 보는 경우도 있지만 삶의 불안함과 불확실성,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무속에 의지하려는 심리도 있다.
이것은 젊은이들 사이에 MBTI가 무속신앙처럼 자리 잡은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MBTI는 80년 전에 미국에서 학생들의 진로상담을 돕고자 만든 일종의 성격지표로 미국에서도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인기가 사라졌는데, 한국에선 뒤늦게 크게 유행하고 있다.
여기서 이들이 왜 교회 공동체에 도움을 구하거나 목회자를 찾아가지 않고 무속 신앙에 의지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무종교인이 크게 늘고 있는데 이들이 종교에 전혀 무관심하지 않다는 사실과도 관계가 있다.
곧 이들이 종교 자체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기성 종교나 제도 종교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 무속이나 마음 수련, 명상 등을 통해 나름의 영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개신교의 신뢰가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교리나 틀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주입하려고 한다면 젊은 세대들에게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할 것이다.
과거에 미신으로 치부하던 무속이 오히려 요즘 젊은 세대에게 호감을 주고 있다면 이것이 왜 그런가를 따져봐야 한다. 정통 신앙을 가장한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는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고 큰 문제이지만, 사람들이 왜 정통 교단 대신 이들을 찾아가는가를 알아야 한다.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는 분명 잘못된 신앙을 가르치지만 이들이 일면 현대인들의 어떤 욕구를 채워주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정통 교단들이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것을 그들이 대신 채워주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 신앙은 언제나 그 시대의 문화를 통해서 전달된다. “기독교는 그리스로 가서 철학, 로마로 가서 제도가 됐다. 유럽으로 가서 문화가 됐으며, 미국으로 왔을 때 교회는 기업이 됐다”는 유명한 말은 기독교의 본질이 존재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시대 상황과 맞물려서 특정한 형태를 띤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기독교가 한국에 와서는 대기업이 됐다”고 덧붙여 말하는 것은 한국의 교회들이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름의 장점도 있지만 이런 한국교회가 많은 사람들의 영적인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교회가 오늘날 이 땅의 젊은이들의 현실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들의 영적인 필요에 민감한 종교 단체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정재영 교수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종교사회학 출처 : 데일리굿뉴스(https://www.goodnews1.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