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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생명의 기원2024-04-16 17:02
작성자 Level 10

생명의 기원 (김영웅)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4-04-12
조회수 524

      생명의 기원


글ㅣ김영웅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 선임연구원
과신대 정회원


@David Marcu, Unsplash


생명의 기원을 묻는 이 이 거대한 질문 앞에 여전히 우리 인간이 내놓은 답은 미약하기만 합니다. 인간의 역사가 우주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티끌처럼 미미한 것처럼 말이지요. 많은 부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한 채 세워진 이론들이 별다른 진전 없이 과거의 역사 속으로 묻혀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런 상황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우주의 기원을 연구하고 설명하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고차원적이고 더 어려운 문제가 바로 생명의 기원일지도 모릅니다. 쿼크, 양성자, 중성자, 전자, 원자, 분자, 나아가 행성까지, 우주를 구성하는 여러 물질들이 엄청난 힘에 의해 고온 고압의 특수한 상황에서 물리화학적 반응으로 생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따지는 것만 해도 충분히 머리를 싸매야 할 일일 텐데, 무생물이 아닌 생물의 생성까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질적으로 다른 증거와 가설이 필요할 것입니다. 생물은 아무리 작아도 단지 수소나 헬륨 덩어리로 이뤄질 수 없고, 돌덩어리들로도 이뤄질 수 없습니다. 가시적인 물질이라고 해서 모두가 생명을 가지진 않기 때문입니다. 존재는 생명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

생명의 기원을 따지기 전에 생명이란 무엇인지 먼저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생명의 필요충분조건을 알아야 하겠지요. 생명을 가진 개체를 생물(생물체, 생명체, 유기체 등도 같은 뜻입니다)이라고 합니다. 그 반대는 무생물(무기화합물도 같은 뜻, 즉 바이러스를 제외한, 생물이 아닌 모든 것)이겠지요. 현대 생물학에서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는 방법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래 소개하는 총 7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면 과학적으로 생물이라고 정의합니다. 

첫째, 모든 생물은 세포로 구성됩니다. 세포는 모든 생물의 구조적 최소 단위이자 생명 현상이 일어나는 기능적 최소 단위입니다. 사람은 약 37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지지만, 생명의 기원을 묻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상대적으로 간단한 단세포 생물의 생성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모든 생물은 물질대사를 합니다. 먹고 소화해서 에너지를 얻고(이화작용) 남는 건 저장하는 과정(동화작용) 모두를 물질대사라고 합니다.

셋째, 모든 생물은 자극에 반응합니다. 자극이란 외부로부터의 물리화학적 신호입니다. 식물이 빛이나 중력을 감지하여 그쪽 방향으로 자라는 현상, 우리가 어두운 곳에 들어갈 때 동공이 커지고 밝은 곳으로 나올 땐 작아지는 현상 등을 떠올리면 되겠습니다. 

넷째, 모든 생물은 항상성을 유지합니다. 항상성이란 외부나 내부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체내의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성질입니다. 높은 온도에 노출될 때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땀을 흘리게 되고, 식사를 할 때 일정한 혈당을 유지하기 위해 인슐린을 분비하는 우리 몸의 반응은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섯째, 모든 생물은 발생하고 생장합니다. 다세포 생물의 경우, 수정된 하나의 세포가 완전한 개체가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전통적으로 발생이라고 정의합니다. 세포 수와 크기를 늘리고 다양한 세포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단세포 생물의 경우, 세포 수를 늘리는 과정만 생각하면 됩니다.

여섯째, 모든 생물은 생식을 통해 자손에게 유전형질을 전달합니다. 종족 보존을 위해 자신과 닮은 개체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생식 혹은 번식이라고 합니다. 그 결과 부모로부터 자손에게 생물학적 형질을 물려주게 되는데, 이를 유전이라고 합니다. 자손에게 물려주는 건 유전형질인 셈이고, 주요 유전형질은 바로 DNA입니다. 

일곱째, 모든 생물은 진화하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합니다.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한 생물 집단 내의 유전자 구성이 변화하여 집단 특성이 변하는 과정과 결과 혹은 현상을 진화라고 정의합니다. 환경에 적응을 잘한 유전자 구성을 가진 개체들이 그렇지 않은 개체들보다 잘 살아남아 개체 수를 늘려나가면서 전체 집단의 구성이 점진적으로 달라지게 됩니다. 


창조 방법에 대한 건강한 탐험

이제 생명의 정의에 대해서 살펴보았으니, 본격적으로 생명의 기원 문제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한 가지 밝혀 둘 사실이 있습니다. 생명의 기원에 대한 명확한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과는 달리 가장 간단한 생명체조차도 하나님이 '어떻게' 창조하셨는지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현재로서는 아무도 모른다고 해야 정직한 것이지요. 창세기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문장만으로 모든 합리적인 궁금증을 묻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저 역시 그리스도인이고 하나님이 인간을 제외한 모든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창세기의 문장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문장을 '즉각 창조'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신 식물이나 동물도 우리가 위에서 잠시 살펴본 생명의 7가지 조건에 따르면, 수정된 하나의 세포에서 성체로 변모하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우리가 아는 모습을 띠게 되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키우는 애완동물인 개나 고양이도 모두 어미가 몇 달간 임신해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우린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든 생명이 하나님의 창조라는 사실도 믿지요. 이 두 가지가 갈등 없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해석이 필요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가 아는 피조물 사이의 중간 과정에 대해서 성경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질문할 수 있습니다. 질문하는 건 잘못된 것도 아닐뿐더러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과학이라는 학문과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이성으로 그 과정에 대해서 묻고 상상하고 가설을 내고 증거도 찾아보면서 하나님의 창조를 더욱 깊고 풍성하게 알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더 영화롭게 하는 삶의 한 방식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학은 신앙을 대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모두가 합의한 생명의 기원에 대한 답은 없지만, 지난 수십 년간 수많은 과학자들이 연구해 온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이 이 과정에는 많은 논쟁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과학과 신앙(혹은 신학) 사이에서 가장 첨예한 갈등 중 하나가 바로 생명의 기원 문제일 테니까요. 이 글에선 모든 실험과 결과를 살펴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논쟁들도 다루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하기엔 지면도 부족할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실험과 결과 위주로 이 난제를 풀기 위한 과거 노력들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훑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연발생설, 파스퇴르의 S자 목 플라스크 실험

먼저, 저 유명한 파스퇴르의 S자 목 플라스크 실험을 소개합니다. 이 실험의 구상, 방법 및 의의를 알아두시면 자연발생설과 그것의 한계를 과학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파스퇴르의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 장치 @wikimedia


1861년 프랑스에서 루이 파스퇴르(1822-95)는 굴곡이 충분히 큰 S자 모양의 목(백조의 목을 떠올리시면 됩니다)이 달린 두 플라스크 안에 동일한 고깃국(육수라고도 하지요)을 똑같이 나눠 담고 열을 가해 끓입니다. S자 목의 끝은 열려 있습니다. 고깃국을 펄펄 끓인 뒤 한 플라스크를 골라 플라스크 몸통 가까운 쪽에서 목을 부러뜨립니다. 이 플라스크는 더 이상 S자 목이 아닌 평범한 목을 가진 1자 목 플라스크가 됩니다. 고깃국 수직 위로 구멍이 뚫린 모양새가 되는 것이지요. 이제 두 플라스크 안에 고깃국이 식도록 가만히 둡니다. 바깥의 공기가 플라스크 안으로 유입되도록 충분한 시간을 기다립니다. 

고깃국을 펄펄 끓인 이유는 그 안에 있는 미생물을 모두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한 마디로 완벽하게 살균을 한 것이죠. 그리고 S자 목과 1자 목을 비교하는 이유는 중력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자 목 플라스크의 경우, 공기 중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중력과 같은 방향으로 쉽게 플라스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S자 목 플라스크 경우엔 공기 중 미생물이 중력의 반대 방향, 즉 중력을 거스르는 힘이 없기 때문에 플라스크 안으로 진입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두 플라스크 모두에서 어떤 변화가 벌어진다면 살균된 고깃국 내부의 무엇인가가 그 변화의 원인일 테고, 만약 S자 목 플라스크가 아닌 1자 목 플라스크에서만 어떤 변화가 생긴다면 고깃국 내부가 아니라 고깃국이 식으면서 외부로부터 유입된 공기 중의 무엇인가가 변화의 원인일 것입니다. 파스퇴르는 이러한 합리적인 구상을 마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S자 목 플라스크를 고안해 냈던 것이지요. 


파스퇴르가 그린 백조목 플라스크 @NCBI


파스퇴르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대로 1자 목 플라스크 안의 끓인 고깃국은 빠르게 탁해지고 미생물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S자 목 플라스크 안의 고깃국은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징한 결과였지요. 결국 그 변화의 원인은 고깃국 자체가 아닌 외부로부터 유입된 공기 중에 존재하는 어떤 물질이었던 것입니다. 

자, 이 간단한 실험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생명의 기원에 대한 질문은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무생물로부터 생물이 그냥 (자연적으로) 생겨난다는 생각, 즉 자연발생설은 고대 신화부터 시작되어 파스퇴르가 살았던 19세기까지 계속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엔 생명력(Vital Force)에 대한 믿음('생기론'이라고도 합니다)도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자연발생설 지지자들은 생명이 무기물이 아닌 유기물에서만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여겼답니다. 돌이나 쇠 같은 물질이 아니라 사체라든가 위에서 살펴보았던 고깃국 같은 유기물에서부터 생물이 생겨난다고 믿었던 것이지요. 더운 여름날 음식물 쓰레기에서 구더기가 생겨나는 현상을 떠올리시면 되겠습니다. 구더기가 생겨난 원인을 지금은 파리가 음식물 쓰레기 위에 알을 낳았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 당시엔 구더기가 자연적으로 생겨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파스퇴르의 S자 목 플라스크 실험은 이러한 근거 없는 믿음에 망치를 휘두른 셈이었습니다. 파스퇴르는 그 실험 결과와 다른 유사한 실험 결과들을 정리하여 "공기에 존재하는 조직체에 관하여(On the Organized Corpuscles That Exist in the Atmosphere)"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하고 이듬해인 1862년에는 2,500프랑의 알함베르상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이로써 자연발생설은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답니다. 덧붙여, 파스퇴르의 S자 목 플라스크 실험은 과학뿐 아니라 철학과 신학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다고 합니다. 생명은 적어도 사체나 끓인 고깃국처럼 미생물의 오염이 되지 않은, 그러니까 한때 살았으나 지금은 죽은 유기물로부터 비롯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증명하고, 나아가 새로운 생명은 기존의 생명으로부터만 나올 수 있다는 개념을 가시화시킨 셈이었으니까요. 당시 과학자들만이 아니라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무수한 믿음과 상상과 주장과 신념들이 단번에 정리가 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파스퇴르 덕분에 자연발생설이 폐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기원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고 과학자들은 계속해서 다른 답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한때 살았던 유기물이 생명의 기원이 아니라면, 한 번도 살았던 적이 없는, 즉 우리가 무기물이라고 부르는 물질로부터 어떤 특정한 반응을 통하여 생명이 기원했을 거라는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생명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앞서 언급한 생명력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그 이전 단계로 돌아간 셈이었습니다. 이렇게 생명이 무기물로부터 점진적으로 기원 되었다는 가설을 '화학 진화(Abiogenesis; Chemical Evolution)'라고 합니다. 


생명의 기원에 대한 다윈의 생각

파스퇴르가 자연발생설의 폐기를 위한 실험으로 열을 올리던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됩니다. '종의 기원'에서 다윈은 생명의 기원에 대해 뭐라고 말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예상 밖에도 이 문제에 대해 다윈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답니다. 그 책은 공통조상과 자연선택설로 진화를 설명한 책이지 생명의 기원을 논한 책은 아니니까요. 생물진화는 기존 생물로부터 시작된답니다. 생명의 기원은 그 기존 생물의 첫 시작을 탐구하는 것이지요. 

또 한 가지 뜻밖인 건 '종의 기원' 마지막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 힘을 지니고 있는 생명이 원래 창조주를 통해 몇 개 또는 하나의 형태 안에 숨이 붙어 넣어졌다는 이 견해에는 어느 정도 힘과 장엄함이 있다." 놀랍게도 다윈은 지구 상 모든 생명의 기원을 신적 행동으로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사석에서 다윈은 자신이 쓴 문장에 대해 후회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그러나 이 책이 여러 판 인쇄를 거듭하는 동안에도 다윈은 그 문장을 변경하지 않았답니다. 다윈조차도 생명의 첫 시작에 대해서는 그 어떤 과학적 증거나 가설도 내놓지 못했던 것이지요. 


범종설

지구 상의 생명의 첫 시작이 지구 내부에서가 아니라 지구 외부, 즉 외계에서 유입되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었는데, 이 믿음을 '범종설(Panspermia)'이라고 합니다. 사람들로부터 냉대를 받아온 이 설은 20세기 들어서도 잠시 부흥을 경험하게 되는데, 놀랍게도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처음으로 밝혀 노벨상을 수상한 프랜시스 크릭(1916-2004)도 목소리를 실었답니다. 물론 확인하기도 어렵고 증거 불충분으로 어떠한 합의도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말이지요. 하지만 외계 생명체가 존재할 거라는 가능성을 함부로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범종설은 여전히 가늘고 길게 살아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외계 생명체가 발견되는 일이 만약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마도 이 설은 끝내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Marko Aliaksandr, Shutterstock


오파린-홀데인 가설, 원시 수프

파스퇴르의 증명으로 자연발생설이 폐기되고 무기물로부터의 생명 발생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가 싶었지만 동력이 없었는지 정체기를 맞이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20년대에 이르러서야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가설이 하나 등장하게 됩니다. 화학 진화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린, 이른바 오파린-홀데인 가설이 그것입니다. 

당시 소련의 생화학자 알렉산드르 오파린 (1894-1980)과 영국의 생물학자 J. B. S. 홀데인 (1892-1964)이 서로 독립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한데 모아 정리한 가설이 되겠습니다. 이 가설은 생물의 발생보다 그 이전 단계를 다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물은 유기체이고 유기물로 이뤄지므로, 생명 발생이 가능해지려면 무기물에서 유기물이 생성되어야만 한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무생물로부터 생물의 발생을 위해서는 무기물로부터 유기물의 생성이 선행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가장 작은 단위의 생물이라고 할 수 있는 단세포조차 유전형질인 DNA를 가지고 있으며 단백질을 발현합니다. DNA와 같은 핵산이나 단백질은 모두 유기물이죠. 또한 세포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 요소들 역시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두 유기물이죠. 이러한 것들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요? 우주의 기본 요소인 수소나 헬륨 같은 기본 원자들이 분명 이 유기물들의 출처일 텐데, 도대체 지구 초기 상태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길래 무기물들에서 복잡한 구조의 유기물 분자들이 생성된 것일까요? 

그들은 메탄, 암모니아, 수소, 물 같은 무기물로부터 단량체의 유기물이 생성되고, 그 뒤를 이어 유기물의 중합체들이 생성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중합체의 유기물들이 세포 비슷한 구조를 이루고 원시 세포가 생성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본적인 무기물들로부터 최초의 생명을 가진 유기체가 등장한 용액을 이름하여 '원시 수프 (Primodial Soup)'라고 합니다. 생명의 기원은 정체도 모르고 어딘지도 모르지만 원시 수프라는 곳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들에 따르면 이 원시 수프 안에서 우리가 잘 아는 단백질의 기본 요소인 아미노산, 핵산의 기본 요소인 뉴클레오타이드 등이 모두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이것이 오파린-홀데인 가설이 말하는 바입니다. 


밀러-유리 실험

가설이 힘을 얻기 위해선 증거가 필요합니다. 경제 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약 25년간 오파린-홀데인 가설은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못한 채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가 1953년 미국 시카고에서 한 대학원생에 의해 재조명되고 다시 연구에 탄력을 받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파스퇴르의 S자 목 플라스크 실험에 이어 두 번째로 꼭 기억하셔야 할 실험입니다. 바로 밀러-유리 실험 ('밀러 실험'이라고도 부릅니다)이지요. 


@wikimedia


어느 날 대학원생 밀러는 오파린-홀데인 가설이 담긴 글을 읽게 됩니다. 당시 화학과 교수였던 유리의 강의에서도 원시 대기에서 유기물 분자가 생성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듣게 됩니다. 이 번뜩이는 청년 밀러는 그 가설을 검증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가만히 책상에 앉아 지적인 희열을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밀러는 직접 유리 교수를 찾아가서 한 가지 실험을 제안하게 됩니다. 밀러는 간단하지만 획기적인 방법으로 유리로 만들어진 여러 실험기구들을 재배치하여 원시 지구를 실험실 안에서 재현하기로 합니다. 직접 눈으로 무기물로부터 유기물이 생성되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생명체의 탄생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밀러가 디자인한 실험 장치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원시 대기'를 뜻하는, 위에 위치한 플라스크입니다. 이곳은 홀데인이 원래 제안했고 당시 원시 대기의 주성분으로 추정되었던 네 가지 기체, 즉 메탄 (CH3), 암모니아 (NH3), 수소 (H2), 그리고 수증기 (H2O)가 섞이는 장소가 됩니다. 수증기는 '원시 바다 혹은 연못'을 뜻하는, 아래쪽에 위치한 물이 담긴 플라스크를 가열할 때 기다란 유리관을 통하여 공급되고, 나머지 세 기체는 직접 넣어준 것입니다. 원시 대기 플라스크에는 한 쌍의 전극을 설치하여 전기 스파크 (원시 지구에 있었을 번개를 재현합니다)를 주기적으로 일으킬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자극을 준 것이죠. 그리고 원시 대기 플라스크 아래에 냉각기를 설치하여 수증기를 식혀 다시 물이 되게 하여 원시 바다 플라스크로 돌아가게 합니다. 가시적으로는 원시 바다에서 공급되는 물이 가열되고, 다른 세 기체와 만나 전기 충격을 받은 뒤 식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즉 물의 순환이 반복되는 실험이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원시 바다 플라스크 안의 물은 핑크색을 띠기 시작하더니 점점 붉어져서 일주일이 지나자 진한 붉은색을 띠는 탁한 물이 되었습니다. 무언가 가시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 분명했죠. 그리고 그 변화는 원시 대기 플라스크 안에서 전기 충격에 의해 일어난 네 기체 간의 화학반응의 결과임이 분명했습니다. 

밀러와 유리는 이 붉은 빛깔을 띤 물의 성분을 조사합니다. 종이 크로마토그래피 방법으로 혼합물 분리를 시도하고, 분리된 화합물들을 분석해 보니 단백질을 이루는 기본 성분인 아미노산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지요. 아미노산은 유기물이었으니까요. 다시 말해, 무기물로부터 유기물이 화학반응을 통해 생성된 것이었습니다. 이 상징적인 실험 이후에도 조건을 변경해 가며 여러 실험들을 진행한 결과 더 많고 다양한 아미노산이 생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실험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원시 대기의 구성성분이 메탄, 암모니아, 수소, 물, 이렇게 네 가지밖에 없었는지, 아니면 더 많은 무기물 분자들이 존재했었는지, 산소는 존재했었는지, 아미노산만이 아니라 핵산의 기본 성분인 뉴클레오타이드는 왜 생성이 안 되었는지, 아미노산이 아니라 단백질은 왜 만들어지지 않았는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유기물이 아닌 유기체, 즉 단세포와 같은 생명체는 도대체 어떻게 생긴다는 말인지, 등의 질문들이 난무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체에서 기본적으로 중요한 유기물 분자가 무기물들의 화학반응으로 생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실험으로 보였던 밀러와 유리는 역사에 의미 있는 자취를 남기는 과학자로 남게 되었습니다. 원시 지구에서 생명체가 무기물로부터 생겨날 수 있을 일말의 여지를 연 셈이었으니까요. 


RNA 세계

센트럴 도그마에 따르면 DNA로부터 RNA가 만들어지고 (전사, Transcription), RNA에서 다시 단백질이 만들어집니다 (번역, Translation). 유전형질이 발현하는 핵심 메커니즘이지요. 여기에선 순서가 중요합니다. 핵산인 DNA와 RNA가 단백질보다 우선합니다.

@wikimedia

앞서 밀러-유리 실험에서 무기물로부터 유기물 분자인 아미노산의 생성을 기념했던 것은 아미노산이 단백질의 기본 구성성분이며, 단백질이 존재해야 센트럴 도그마의 모든 과정을 진행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전사 과정을 담당하는 핵심 분자인 중합효소 (Polymerase)도 단백질이지요. 이 중합효소가 없으면 DNA의 복제도 불가능하고 DNA로부터 RNA가 성되지도 못할 것입니다. 생체 내에서도 단백질 합성의 소스는 센트럴 도그마입니다. 아무렇게나 아미노산이 연결된다고 해서 어떤 단백질이 기능을 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죠. DNA가 가진 염기서열로부터 코딩된 서열로 정확히 아미노산이 연결되어야 기능적인 단백질이 합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밀러-유리 실험은 단백질이 DNA나 RNA보다 우선됨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순서가 현재 우리가 아는 상식과 달랐던 것입니다. 

이때 단백질이 먼저가 아니라 RNA가 지구 상에서 먼저 생겨났다는 가설이 나오게 되고 각광을 받게 됩니다. 'RNA world'라고 부릅니다. 이 가설의 최대 난점은 앞서 언급했다시피 중합효소를 포함한 필수 단백질들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어떻게 RNA 스스로 복제하고 번역 과정까지 이끌었느냐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RNA의 구조를 기반으로 해서 RNA가 스스로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설을 내놓게 됩니다. 단백질이 이 지구 상에 존재하기 전에 RNA가 먼저 존재했다는 시나리오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단백질 역할을 하기도 하는 RNA도 발견되면서 이 가설은 힘을 얻게 됩니다. 물론 여전히 가설로 남아 있는 상태이지만요.


생명의 기원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지금까지 살펴본 여러 가설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불가능할 정도로 지극히 낮은 확률을 뚫고 우연이 연달아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가설들은 생물의 최소 단위인 세포의 기원조차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지요. 시간이 흐르고 과학이 더 발전하면 과연 우리 인간은 생명의 기원을 밝혀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이러한 사실들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과학적으로나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을 모두 신적 행동으로 돌려버리는 우는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성경대로(?)' 믿는답시고 이러한 건전한 과학적 탐구를 모른 척하거나 비난하거나 악마화해도 안 될 것입니다. 생명의 기원 연구가 진행되고 새로운 사실이 더 밝혀진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창조가 폐기되진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창조의 목적이 아닌 방법에 대한 연구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왜'에 대한 답은 과학의 영역을 벗어납니다. 과학은 '어떻게'에 대한 답만을 할 수 있을 뿐이지요. 즉, 과학이 할 수 있는 일을 마음껏 해도 하나님의 창조 원리나 섭리가 약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시작이 하나님의 의도인지 우연의 산물일 뿐인지에 대한 논쟁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신학의 영역에 속합니다. 즉 이성과 논리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신앙과 믿음의 문제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과학적인 탐구의 과정과 결과에 그리스도인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더욱 깊고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참고문헌

1. '기원 이론', 새물결플러스
2. '생물학자의 신앙고백', 선율